오늘은 얼마 전에 장바구니에 슬쩍 담았던 실리콘 주걱 얘기를 해볼까 해요. 몇 년째 쓰던 나무 주걱 손잡이가 갈라지길래 바꿀 때가 됐다 싶었거든요. 국이든 볶음이든 매일 뭔가는 젓게 되는데, 그때마다 손잡이 갈라진 틈에 손이 걸리는 게 은근히 신경 쓰였어요. 주말에 대형마트 들렀다가 조리도구 코너를 지나가는데 실리콘 재질 주걱이 눈에 딱 걸려서, 살까 말까 한참 들었다 놨다 하다가 결국 집어왔어요.
처음엔 그냥 색만 예쁜 건가 싶었어요. 냄비에 넣고 카레 젓는데 바닥에 붙은 것까지 사르르 긁어내는 느낌이 나무 주걱이랑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열에도 끄떡없어서 팬 위에 그냥 걸쳐놔도 녹거나 눌어붙지 않았고요. 볶음요리 할 때 톡톡 소리 내면서 냄비 바닥 긁는 느낌이 재밌기까지 했어요. 저 혼자 저녁 준비할 때도 이 정도면 충분히 손이 덜 가겠다 싶었어요.
솔직히 처음 며칠은 신세계였어요. 카레며 된장찌개며 눌어붙기 쉬운 요리를 젓고 나서 바로 씻어도 냄새나 색이 배지 않으니까 설거지가 확실히 편했거든요. 나무 주걱은 아무리 잘 말려도 은근히 냄새가 남았는데, 이건 뜨거운 물로 헹구고 나면 다음 요리할 때까지 냄새 걱정이 없었어요. 국자처럼 오목한 부분이 있는 제품이라 국물 요리 뜨는 것도 겸할 수 있어서 하나로 두 가지 몫을 하는 느낌이었어요.
근데 며칠 쓰다 보니 아쉬운 점도 슬슬 보이더라고요. 일단 재질이 물러서 그런지 딱딱한 볶음밥이나 두꺼운 고기를 뒤집을 땐 주걱 끝이 살짝 휘는 느낌이 나요. 힘을 세게 줘야 하는 요리엔 아무래도 예전 나무 주걱이나 뒤집개가 더 손에 맞더라고요. 그리고 손잡이 부분이 매끈해서 물 묻은 손으로 잡으면 살짝 미끄러운 것도 조금 아쉬웠어요. 후기 몇 개 찾아봤을 때도 손잡이 미끄러움 얘기가 꽤 나오길래 저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하고 넘겼어요.
색이 예쁜 것도 장점이자 단점이었어요. 연한 민트색이라 국물 요리에 몇 번 쓰니까 색이 살짝 물드는 느낌이 나더라고요. 진한 양념 요리를 자주 하는 집이라 그런지 몇 달 쓰면 얼룩덜룩해질 것 같긴 한데, 아직까진 크게 티 나지 않아서 지켜보는 중이에요.
참, 어제는 새 주걱 걸어둘 자리 만든다고 조리도구 서랍을 정리하다가 야채칸까지 손을 댔는데, 거기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봉지 하나가 나왔어요. 검은 비닐로 꽁꽁 싸매놓은 채로 꽤 오래된 것 같은데 뭐가 들었는지 도저히 기억이 안 나서, 열어볼까 말까 몇 초 고민하다가 결국 그냥 버렸어요. 이런 정체불명 봉지가 야채칸에서 나오는 게 벌써 몇 번째인지, 이제 놀랍지도 않네요. 아파트 살면서 냉장고 정리를 그렇게 자주 하는 것 같은데도 매번 뭔가 하나씩은 숨어 있더라고요.
어제 저녁엔 새 주걱으로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이면서 바닥까지 사르르 긁어봤는데, 확실히 눌어붙는 게 덜하긴 하더라고요. 아이들 국그릇에 퍼줄 때도 손목에 힘이 덜 들어가서 그런지 한결 편했어요. 매운 정도는 여전히 따로 맞춰야 하지만, 도구 하나 바뀐 걸로 저녁 준비가 이렇게 사소하게 편해질 줄은 몰랐어요.
가격도 마트에서 만 원 안팎이라 부담 없었고, 무엇보다 설거지 시간이 줄어드니까 아이들 밥 차리는 흐름이 한결 편해졌어요. 힘줘야 하는 요리엔 살짝 아쉬운 것과 색 얼룩만 빼면 요즘 부엌에서 제일 자주 손 가는 도구가 됐네요. 색깔이 몇 가지로 나오길래 다음번엔 진한 색으로 하나 더 들여볼까 고민 중이에요. 이 맛이지 ♡ 하면서 살림 도구 하나 늘리는 재미도 은근히 쏠쏠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