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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 빨래랑 저녁이 겹치는 날

장마가 시작되고 나서부터는 하루 일과의 순서가 완전히 뒤바뀌었어요. 원래는 저녁 준비를 먼저 시작하고 빨래는 틈틈이 돌리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하늘 눈치를 보느라 빨래부터 던져놓고 저녁은 그 다음이에요. 어제는 특히 그랬어요. 아침에 잠깐 해가 났길래 이때다 싶어 세탁기를 두 번이나 돌렸거든요.

문제는 그 사이에 저녁 시간이 훅 다가온다는 거죠?! 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를 걷을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에 냄비는 이미 올려놨어야 하는 시간이 지나 있고, 아이들은 배고프다고 부엌 앞을 왔다 갔다 하고. 저는 손이 두 개뿐인데 할 일은 네 가지쯤 되는 느낌이었어요.

냉장고 안의 미스터리#

그러다 야채칸을 열었는데, 처음 보는 봉지가 하나 있더라고요. 까맣게 코팅된 비닐에 뭔가 딱딱한 게 들어있는데 라벨도 없고, 저도 언제 넣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냉동실도 아니고 야채칸에 왜 있는 건지. 열어볼까 하다가 저녁 시간에 쫓겨서 일단 옆으로 밀어두고 계속 재료를 찾았어요. 이런 정체불명의 물건, 집집마다 하나씩은 있지 않나요 ㅎㅎ

야채는 다행히 있는 걸로 그럭저럭 맞춰졌어요. 애호박 하나, 양파 반 개, 두부 한 모. 된장찌개로 방향을 잡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니까 집안 공기가 확 달라지더라고요. 창밖은 계속 부슬부슬 비가 오는데 부엌만 따뜻한 느낌이었어요. 사실 이번 주말에 대형마트 가서 된장을 큰 통으로 사놨던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 몰랐어요. 평소엔 뭘 그렇게 많이 사나 싶었는데, 이런 날 꺼내 쓰니까 신기하게 마음이 든든하더라고요.

아이들 밥그릇에 담을 때는 고춧가루를 반만 넣었어요. 저희 집은 매운 정도를 늘 따로 맞춰야 해서, 냄비에서 한 국자 덜어놓고 그 뒤에 매운 걸 더하는 식으로 해요. 막내는 그마저도 맵다고 물을 찾을 때가 있어서 옆에 물컵부터 챙겨놓는 게 습관이 됐어요.

다 못 걷은 빨래#

빨래는 결국 다 걷지 못했어요. 저녁 다 먹고 나서야 생각나서 부랴부랴 걷었는데 반쯤은 눅눅하더라고요. 장마철엔 이게 참 답이 없어요. 건조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몇 번째 하는지 모르겠어요. 동네 마트에서 급하게 산 제습제도 옷장 앞에 놔뒀는데 효과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고요. 아이들 옷은 그나마 실내 건조대로 옮겨놨는데, 수건은 자리가 없어서 결국 다용도실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하루를 더 버텨야 했어요.

참, 그 정체불명의 봉지는 결국 설거지하다가 다시 발견했는데, 열어보니 예전에 사둔 표고버섯 말린 거였어요. 괜히 며칠을 신경 쓰였네 싶어서 혼자 웃었어요 :)

저녁은 다 먹고 나면 늘 그 순간이 좋아요. 그릇 정리하면서 창밖 비 소리 듣는 그 잠깐. 설거지물 소리랑 빗소리가 겹쳐서 들리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아요.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지나가나 싶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