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오는 저녁이었어요. 아이들은 저녁 메뉴로 국물 있는 걸 노래처럼 불렀고, 저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뭘 끓일지 한참 고민했어요. 창밖 빗소리 들으면서 서 있으니 몸이 먼저 뜨끈한 걸 원한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결국 손이 간 건 며칠 전 사다 둔 멸치칼국수 분말이었죠.
사실 그 분말, 계획해서 산 게 아니었어요. 장보기 갔다가 계산대 앞에서 카드가 안 긁혔던 날 있잖아요. 당황해서 짐을 이것저것 다시 내려놓다가 어쩌다 손에 남아 있던 게 하필 그 봉지였어요. 그날은 정말 식은땀이 났는데, 지나고 보니 웃긴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날이 흐리면 몸이 먼저 뜨끈한 국물을 찾더라고요. 저는 메뉴 고민을 오래 끄는 편은 아니에요. 집에 있는 재료로 되는 걸 바로 꺼내는 쪽이 마음이 편해서요. 냉장고를 훑어보니 채소도 어중간하게 남아 있어서, 오늘 안에 정리해야겠다는 생각도 슬쩍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녁 메뉴는 정해졌고, 냄비부터 꺼냈습니다.
등촌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이 조합을 처음 알게 된 건 한참 됐어요. 지인이 어디서 먹었다며 알려준 이름이 “등촌 멸치칼국수”였는데, 처음엔 그냥 지역 이름인가 보다 하고 넘겼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국물 베이스에 붙은 이름이더라고요.
멸치 육수에 매콤한 양념을 살짝 얹는 방식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니 마음이 동했어요. 저희 집은 매운맛을 아이들 기준으로 조절하는 편이라, 강하게 맵기보다는 은은하게 얹는 정도가 딱 좋았거든요. 국물 자체가 진하다는 얘기도 들어서 더 궁금해졌고요. 이름만 듣고 상상해 본 국물 색이 실제랑 비슷할지도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진작부터 한번 끓여보고 싶었는데 계속 미뤄졌던 거예요. 냉장고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분말 봉지를 볼 때마다 마음 한켠이 찔렸다고 해야 하나요. 이번엔 비 오는 핑계로 드디어 시도해봤습니다.
장바구니에 뭐가 들어갔는지 보면
재료는 크게 어려운 게 없었어요. 냉장고에 있는 채소 몇 가지랑 고기 조금, 그리고 양념들. 국물 베이스는 분말이 다 잡아주니까 나머지는 취향껏 채우면 되더라고요. 새로 사야 할 것보다 이미 있는 걸 어떻게 조합할지 고민하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버섯은 느타리랑 표고를 둘 다 넣었는데, 이건 그날 냉장고 사정에 따라 갈렸을 거예요. 도마 위에 버섯을 찢어 올려두니 향이 먼저 퍼졌고, 미나리는 향 때문에 꼭 넣고 싶었어요. 감자랑 양파는 국물에 단맛을 보태줄 거라 믿고 넣었습니다. 감자 껍질 벗기는 동안 손이 시렸는데, 이런 날씨엔 뜨끈한 국물이 왜 당기는지 새삼 알겠더라고요.
장보기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있어요. 하나 사러 갔다가 봉지 가득 사 온 날이 있었는데, 그날 산 미나리 한 단이 냉동실 구석에서 이날까지 버텨준 거였어요. 계획대로 되는 장보기가 별로 없다는 걸 매번 느껴요.
고기는 샤브샤브용으로 얇게 썬 걸로 준비했어요. 국물에 넣으면 금방 익으니까 따로 손질할 것도 없고, 이런 부분에서는 편했습니다. 채소 써는 동안 옆에서 자꾸 뭐 만드냐고 묻는 통에 손이 자꾸 멈췄네요.
양념장은 고추장이랑 된장, 참치액젓, 다진마늘, 국간장을 미리 섞어뒀어요. 팁대로 미리 풀어두니 확실히 손이 덜 갔습니다. 전체 재료는 이래요.
- 감자 2개
- 양파 1개
- 느타리버섯 적당량
- 표고버섯 적당량
- 미나리 2개
- 샤브샤브용 고기 적당량
- 물 4.5l
- 멸치칼국수 분말 1봉
- 양념·소스: 고추장, 된장, 참치액젓, 다진마늘, 국간장 (정확한 비율은 원문 레시피에)
물이 끓는 소리부터 시작됐어요
냄비에 물을 올리고 나서부터는 순식간이었어요.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양념장을 풀고, 채소를 차례로 넣었죠. 국물 색이 진해지는 걸 보는 그 몇 분이 저는 은근히 좋아요. 부엌 전체에 멸치 국물 냄새가 퍼지니까 다들 배고프다며 부엌 앞을 서성이더라고요.
정확한 순서랑 불 조절 타이밍은 불 조절과 순서 정리에 자세히 나와 있어서, 저는 그걸 보고 따라 했어요. 면이랑 고기를 넣는 타이밍만 잘 맞추면 크게 실패할 일은 없더라고요.
국물 맛은 좋았는데, 그래도 걸리는 게 있었어요
완성!! 하고 냄비 뚜껑을 열었을 때 올라오는 김이랑 냄새가 벌써 반은 먹은 기분이었어요. 그릇에 퍼서 아이들 앞에 놓아주니 후루룩 소리부터 났습니다.
국물 맛은 제 예상보다 진했어요. 멸치 베이스에 양념장이 더해지니 칼칼하면서도 깊은 맛이 났고, 막내도 맵다는 말 없이 잘 먹었어요. 면발이 국물을 머금은 채로 후루룩 넘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저까지 배가 고파지더라고요. 버섯이랑 감자도 국물 맛을 제법 흡수해서, 건더기만 건져 먹어도 심심하지 않았습니다.
식탁 분위기도 오랜만에 조용했어요. 다들 그릇에 코 박고 먹느라 말이 줄었거든요. 이런 저녁은 은근히 자주 없어서 혼자 속으로 웃었습니다. 창밖 빗소리랑 그릇 부딪는 소리만 번갈아 들리는 게 나쁘지 않았어요.
남은 국물에 밥이랑 계란을 넣어 볶아 먹었는데, 이 부분은 정말 팁대로 해서 실패가 없었습니다. 이 한 그릇에 뭐가 얼마나 들어있는지 문득 궁금해져서 찾아봤어요.
| 칼로리 | 381 kcal |
|---|---|
| 탄수화물 | 66.4 g |
| 단백질 | 36 g |
| 지방 | 14.8 g |
| 당류 | 17.3 g |
| 나트륨 | 1898 mg |
| 재료비 | 약 6,818원 (2인분 전체) |
| 사 먹으면 | 약 9,000원 |
다만 솔직히 말하면 걸리는 지점이 있었어요. 버섯 종류를 두 가지나 넣다 보니 장바구니 값이 생각보다 올라갔고, 미나리는 동네 마트에서 늘 있는 채소가 아니라서 그날그날 있는지 없는지부터 확인해야 했어요. 재료 하나하나는 저렴한데, 다 모아 놓고 보면 만만한 금액은 아니더라고요. 매번 이 조합으로 끓이려면 장보기 동선을 한 군데 더 들러야 한다는 뜻이라, 자주 하기엔 살짝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도 맛있게 먹자 ♡ 하는 마음으로 한 그릇 뚝딱 비웠습니다. 다음엔 미나리 대신 집에 있는 다른 향채로 바꿔봐도 괜찮을 것 같아요 :)
국물 요리 중에 이렇게 계기 없이 갑자기 끓이게 되는 메뉴, 다들 하나쯤 있으실까요? 저는 이번 멸치칼국수가 딱 그런 쪽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