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말 주말이면 냉장고 문을 열 때부터 마음이 조금 바빠져요. 식구가 다 모여 있으니 먹는 속도는 평일보다 빠른데, 괜히 장바구니를 크게 만들고 싶지는 않거든요. 이번 주는 동네 마트까지 리모델링에 들어가서 평소처럼 슬쩍 다녀오기도 애매했답니다.
대형마트에 갈까 잠깐 망설였지만, 주말에 들어가면 필요한 것보다 눈에 들어오는 게 더 많잖아요. 일단 오늘 먹을 간식은 집 안에서 찾아보기로 했어요. 냉장고 문을 오래 열어 둔 채 이 통 저 통 당겨 보는 모습이 썩 알뜰해 보이지는 않았지만요.
그래서 냉장고 안에 남은 것부터 꺼내 보다가 얼마 전 제 돈 주고 들인 손잡이 달린 투명 식재료 보관통을 제대로 써봤어요. 길쭉한 모양이라 옥수수를 나란히 눕혀 두기 좋아 보였고, 안이 훤히 보여서 먹을 것을 잊어버리는 일도 덜하겠다 싶었죠. 월말에는 새로 사는 것보다 이미 산 물건을 부지런히 쓰는 게 괜히 든든해요.
옥수수가 보이니 먼저 손이 가요
8월 제철 농산물로 옥수수가 올라온다는 8월 제철 농산물 이야기를 보고 장 봐 둔 것이었어요. 쪄서 한 김 식힌 뒤 먹기 좋은 만큼만 잘라 통에 담았더니 노란 알맹이가 투명한 벽 너머로 촘촘히 보이더라고요. 냉장고 깊숙이 그릇째 밀어 넣었을 때와는 느낌이 꽤 달랐어요.
손잡이를 잡고 서랍처럼 쓱 당길 수 있는 건 확실히 편했답니다. 앞에 다른 반찬통이 있어도 몸을 반쯤 숙여 뒤적일 일이 줄었고, 뚜껑을 열지 않아도 남은 양이 보였어요. 주말 간식 뭐 있냐는 말이 나오기 전에 아이들이 먼저 통을 발견했죠.
처음에는 손잡이가 괜히 공간만 차지하는 건 아닐까 싶었어요. 그런데 손에 물이 묻은 채로도 통 몸통을 끌어안지 않고 꺼낼 수 있으니, 식탁과 냉장고를 오갈 때는 제법 편하더라고요. 뚜껑도 들뜨지 않고 닫혀서 옆으로 기울이지만 않으면 마음이 놓였고요.
막내는 노란 게 줄 맞춰 들어 있다며 옆에서 한참 들여다봤어요. 결국 식탁에 둘러앉아 하나씩 들고 촵촵 먹었는데, 평소 같으면 남은 옥수수는 저 혼자 기억하다가 다음 날 꺼냈을 거예요. 눈에 보인다는 장점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세더라고요.
뚜껑 홈은 좀 얄미워요
다만 보관통이 길쭉하다 보니 냉장고 선반 폭을 먼저 재봤어야 했어요. 자리는 잘 잡았지만 옆에 둔 둥근 그릇을 꺼낼 때 손잡이가 살짝 걸려요. 옥수수를 통째로 넣기에는 애매해서 결국 잘라 담아야 했고요.
가장 아쉬운 건 뚜껑 안쪽의 좁은 홈이에요. 옥수수에서 나온 물기가 그쪽으로 들어가면 수세미가 한 번에 닿지 않아 작은 솔을 다시 꺼내야 해요. 꺼낼 때는 쓱이지만 씻을 때는 쓱으로 안 끝나는 물건, 딱 그 정도랍니다.
그래도 남은 식재료가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으니 주말 내내 꽤 잘 비웠어요. 보관통 하나 샀다고 냉장고가 갑자기 반듯해지는 건 아니고, 옆 칸에는 비닐에 든 채소가 여전히 삐죽 나와 있었죠. 저녁에 빈 통을 씻어 엎어 두었는데, 뚜껑 홈에는 옥수수 수염 한 가닥이 또 붙어 있었어요.